어린 시절은 지루했다. 신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부모님은 엄격했고, 잠시 살았던 시골 동네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윗동네에 있는 반달곰농장에서 반달곰이 탈출해 학교가 휴교 되었던 것, 홍수가 났는데 겁도 없이 개천에서 장화를 신고 친구들과 놀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 지루한 시간을 빗겨갈 수 있는 장소는 나의 책상 밑 작은 공간 뿐 이었다.
열 살의 나는 생각이 많았다. 어른의 눈으로 다시 봐도 난 너무 생각이 많았다. 아빠가 어딘가에 서 주워온 철제 사무용 책상 아래에서 난 아주 많은 생각을 했다. 아침에 대해 생각했고, 점심에 대해 생각했고, 밤에 대해 생각했고, 엄마에 대해 생각했고, 음식에 대해, 사랑에 대해, 아픔에 대해, 죽음에 대해, 태어남에 대해, 욕에 대해, 친구에 대해, 사랑에 대해, 악몽에 대해 생각했다. 떠오르는 것들은 모조리 잡아 생각이라는 틀에 넣고 몇 날 며칠을 곱씹곤 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우울증도 있었던 것 같고, 굉장히 어두웠던 아이였지만 IMF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바빴던 부모님 덕에 나의 비정상적인 상태는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노는 재미도 없고, 매일 붙어있는 언니와 다툰 날이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다양한 생각을 하며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었다. 어린이 동화집부터 시작해서 공상과학 소설, 동시집, 위인전까지 모조리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제제를 만났다. ‘나만 이렇게 아픈 게 아니구나, 나만 이렇게 외로운 게 아니구나.’하고 안심할 수 있게 해준 친구.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는 열 살부터 스무 살까지의 날 위로했다. 마음이 우울할 땐 늘 그 책을 펼치곤 했다. 어느 페이지를 먼저 펼치든 상관없었다. 제제는 늘 아팠고, 그럼에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뽀르뚜가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제제가 정상적이고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제제가 안심을 할 때마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래, 괜찮아. 이대로도 괜찮아.
이제는 아픔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매를 많이 맞아서 생긴 아픔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유리조각에 찔린 곳을 바늘로 꿰맬 때의 느낌도 아니었다. 아픔이란 가슴 전체가 모두 아린, 그런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팔과 머리의 기운을 앗아가고,
베개 위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게 하는 그런 것 이었다.
제제가 느끼는 감정들은 언제나 내게 위로가 되었다. 이유 없이 드는 수많은 생각과 주체할 수 없이 깊어지는 다양한 감정들을 차분히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내가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제제와 뽀르뚜가는 하나씩 따듯하게 정의 내려 주었다. 제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상상도 못할 만큼 나쁜 괴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픔이 무엇인지, 아픔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제제는 열 살의 나보다도 절반은 어렸지만, 몇 곱절은 어른스러웠다. 그때부터 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도 좋아한 친구였지만 스물한 살 이후로 난 제제를 찾지 않았다. 나만의 뽀르뚜가 아줌마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버쩍 커버린 몸에 비해 한없이 어린 내 마음을 뽀르뚜가 아줌마는 다정히 매만져 주었다. 자기 안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볼 사람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며 아직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외면해 둔 여러 마음들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뽀르뚜가 아줌마는 몸뚱이가 커다란 제제를 귀여워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을 거름삼아 제제에게 있던 라임 오렌지 나무인 밍기뉴처럼 내 마음에는 단 하루도 버려두고 싶지 않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게 되었다. 나무 한 그루에 연한 초록의 잎이 날 무렵, 뽀르뚜가 아줌마와 난 이별했다. 혼자 나무를 키우는 일은 고된 일이었지만, 세상일이라는 태풍이 내 나무를 스쳐지나갈 때마다 난 뽀르뚜가 아줌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내 나무에게 들려준다. ‘몰아치는 바람마저 어린 제제 널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그만큼 넌 괜찮은 아이라고.’
책상 밑에서 십대의 난 제제를 만났다. 이십대 초반의 난 뽀르뚜가 아줌마를 만났고, 이십대 후 반의 난 내 마음 속에 나무 한 그루를 키운다. 나무가 조금 건강해질 무렵, 어린 제제를 만나고 싶다. 내가 받았던 온기를 조금이라도 나누어주고 싶다. 누군가의 가슴에 소중한 나무 한 그루를 심어주고 싶다.
외로웠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나의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나답게 만드는 북극성이 되어 나를 지탱해준다.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더운 바람에도 마음이 상쾌해진다.
Comments (2)
닫기어릴 적 처음으로 이사란 걸 가서, 분갈이를 겪는 풀처럼 아픈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 였어요. 이 글을 보니 오랜만에 그 때의 감각을 느끼는 기분.
지금 키우는 마음 속 한 그루는 충분히 건강하게 자라고 있을 것 같아요. 곰님의 소중한 나무 한 그루를 마음에 심을 누군가가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