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부를 읽을 땐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시니컬한 서점 주인과 상처받았지만 티 내지 않으려는 씩씩한 영업사원의 대화로 아, 이 둘은 나중에 엮이겠군 식의 단조로운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각 이야기의 앞장에 나오는 책소개는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궁금해질 찰나, 가던 손을 멈추고 뒤로 돌아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마야’가 등장하고부터 이야기는 생기 있게 윤이 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섬에서 서점을 하며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에이제이에게 불행은 갑자기 들이닥쳤다. 예고 없이 아내를 앗아간 사고로 냉소적이고, 내일 죽어도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삶을 살던 중 누군가 서점에 두고 간 여자아이를 만난다. 잃어버린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부터 에이제이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하루만 지내고 돌려보내려 했는데, 마야의 애착 인형 엘모까지 마음에 들어오게 되어버린다. 에이제이는 분홍색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마야를 보고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기운이 속에서 간지럽게 부글거리는 느낌이었다.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거나 벽이라도 쾅 치고 싶었다. 술에 취한 기분, 아니면 적어도 탄산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미치겠군. 처음엔 이런 게 행복인가 보다 했다가, 이내 이건 사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빌어먹을 사랑, 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