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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한 가지 사실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망연자실해도, 일상은 지나간다. 뒤로 미뤄놓을 수 있는 구조로 생겼다니, 마음이란 의외로 잔혹하다. (변하지 않는 것이 행복의 증거라 믿고 싶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한 가지 사실만이 변하지 않을 뿐이다. 이해가 없는 곳에는 사랑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나중에 이해할 수 없는 공백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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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계속되는 행복을 주세요
카모메 식당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랬지만, 책을 보고 나서도 주먹밥과 시나몬 롤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나의 최애 영화인 카모메 식당의 비하인드 스토리(주인공들이 핀란드를 찾은 이유)와 각자의 소소한 이야기와 감동을 엮은 책. 이 곳에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요. 꿈 많은 20대도 아니고 일억천금을 노리는 사업가도 아니다. 일본에서 나름대로의 성실한 생활을 하던 3명의 여자가 낯선 땅 ‘핀란드’에서 만났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에서 나누는 생각, 이야기, 일어나는 소소한 일 들을 기분 좋게 엮었다. 그 멍하니 있는 게 잘 안되네요. 멍하니 있으려고 해도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답답한 것들이 빠져나가질 않아요. – 마사코 – ‘카모메(かもめ)는 일본말로 ‘갈매기’의 뜻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사치에가 가게를 열기 전, 부둣가의 태평스럽고 뻔뻔한 갈매기를 보며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영감을 얻은 것이다. 카모메 식당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치에의 ‘소박하지만 완벽한 밥상’을 마주하고 두런 두런 인생을 이야기 한다. 밝음과 어두움, 허전함과 꽉 참, 모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인생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밥상은 마음 한 켠에 뜨뜻한 무언가로 자리매김하며 위안을 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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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말의 바다를 나아갈 배
배를 엮다
사전을 만든다라? 그 일 참 지루하고 고단하겠네. 라고 단정지었던 초반 생각과는 달리 사전을 거의 완성해 가는 단계에서는 나도 모르게 손을 꽉 쥘 정도로 이 사람들의 ‘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고 흥미진진 했다. 배를 엮다는, ‘사전’ 이라는 배를 편집하고 있는 성실하게 그지 없는 ‘마지메’를 중심으로 아날로그적 가치와 감성을 건드리며 현대 사회에서 스치고 지나갈 법한 세세한 일의 방식까지도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요즈음은 포탈 사전, 모바일 앱 등으로 몇 번의 타이핑만 하면 원하는 결과를 척척 찾아 보여주는 스마트한 세상이지만 모두 어릴 적 기억엔 얇은 사전 종이를 넘기며 손가락으로 아래 위를 훑으며 깨알 같은 단어를 찾아 밑줄을 그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배를 엮다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종이사전을 대표하여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 기억해야 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 주인공 마지메는 지나치게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한 가지에 파고 드는 집중력이 무서울 정도여서 원래 속해 있던 부서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어둠의 세계에 있던 사람이었다. 사전 편찬에 적임인 후임을 찾기 위한 사수의 눈에 띄기 전의 마지메는 매일 아침 출근 길 지옥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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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묘한거야
여자 없는 남자들
여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남자들의 이야기는 숱하게 읽어봤지만, 오로지 남자의 시선과 감정을 담은 여자 이야기 묶음집은 처음인 듯 싶다. 그것도 한 여자가 아닌 저마다 경험한 여러명의 여자에 대한 진지하고 생각의 깊이가 남다른 감정과 기억에 대한 속내는. 이들은 모두 혼자다. 여자를 잃고 난 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화려한, 좋았던, 혹은 나빴던 순간과 존재하던 순간을 겪고 난 후의 감정은 당시보다 더 솔직하고 때론 차갑고 뜨겁다. 정말 오래, 깊이 남는 기억은 그 당시의 감정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여운으로 자리한다. 여자를 잃은 남자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흥미롭고 진지했다. 뜨거운 커피를 한잔씩 두고 조근조근, 눈은 허공을 향하며 그 때의 기억을 더듬는 말투로 내게 직접 이야기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들이 뱉는 퍼즐에 어떤 위로도 할 수 없는 자리였겠지. 그저 듣는 것이 최선인. 잃을 것을 예감한 이에게 닥친 실제의 상황은 상상보다 더 큰 공허함과 슬픔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셰에라자드’와 ‘기노’가 좋았다. – [본문 ‘셰에라자드’ 중] “어쨌든 학교 졸업하고 나니까 어느샌가 그를 잊어버렸더라. 스스로도 신기할만큼 깨끗이.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