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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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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오후 2016.09.26.

이런 우주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건 여러 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서른이 됐는데, 이제 뭘하고 살아야 하나.

다른 생각 하나도 안하고 논문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 문득 허기처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그러다가 에잇, 책이나 읽자, 싶어 골라든 책이 바로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가의 수는 예나 지금이나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건 소설가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일이 뭐냐고? 저자는 말한다. ‘쓰는 것’이라고.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p19

단순하고 쉽게 느껴지는 ‘쓰기’라는 두 글자 속에 얼마나 많은 울분, 두려움, 고통이 들어있는지 작문과제 제출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소설가 지망생들은 생각한다. 언젠가, 한가한 때가 오면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생각한다. 아이, 글 잘 쓰는 사람이 내 얘길 쓰면 책이 몇 권은 될 텐데. 그러나 거지같이 쓰더라도 나의 쓰기는 나의 몫이다.

내 인생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수로 처음부터 잘 살겠나? 소설을 쓰는 일은 ‘인생이라는 게 원래 뭐 그따위’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일로 시작한다. -p92

김연수는 말한다. 이번 생은 글렀다고. 이 지구에선 가만히 있으면 더 나빠지기는 해도 더 좋아지는 법은 없다고. 그래서 나와 같이 어쩌다보니 인생을 글러먹은 사람들은 ‘이젠 쓰는 수밖에 없어.’ 체념을 함과 동시에 뒤로 돌아보지 않는 대담함을 얻게 된다. 나와 같이 대책 없이 걷고 있는 이에게 위로가 될까 하여 한 문단 전체를 소개한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 고민할 때, 나는 무조건 해보라고 권유하는 편이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다리가 불탈 때까지는 써보자. 그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든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체니까.-p98

불탄 다리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것. 그리고 뭐든 우선 쓰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다음을 쓰는 작업이 될지 모른다. 쓴다는 것은 소설가의 일일 뿐 아니라 길을 찾는 모든 이들의 일일지 모른다.